사람들은 종종 공감능력 부족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오해한다. 이는 자폐 스펙트럼 아동이 성인기에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보일 확률이 높다는 잘못된 추측으로 이어진다.
사이먼 배런코언(Simon Baron-Cohen) 교수는 지난 2022년 9월에 개최된 ‘자폐아동 부모를 위한 서밋(Autism Parenting Summit)’ 인터뷰 중 “자폐인과 사이코패스는 거의 정반대이다.”라고 말했다. 배런코언 교수의 발언은 우리의 시각을 넓혀줌과 동시에,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자폐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자폐아동 부모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배런코언 교수는 자신의 저서 <패턴 파악 전문가: 자폐는 어떻게 인류의 발명을 이끌었는가 (원제: The Pattern Seekers: How Autism Drives Human Invention>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공유했다. 그는 공감능력에 대해 언급하며,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정서적 공감이 아닌 인지적 공감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음을 설명했다.
배런코언 교수는 자폐인도 타인의 생각 및 감정에 대한 적절한 반응으로 표출되는 정서적 공감을 온전히 느낀다고 설명한다. 물론 일부 자폐인은 표정과 몸짓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일단 누군가가 곤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대부분 적절한 주의를 기울여 대응하고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배런코언 교수는 ‘인지적 공감’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으로 정의하며, 종종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에게 어려움을 야기하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사이코패스는 이 방면에 특출난 모습을 보인다. 타인을 조종하려면 우선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자폐와 사이코패스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게 힘든 자폐성 장애인들에게는 누군가를 속이거나 조종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자폐와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모두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으로 인한 어려움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종종 연관되어 있다는 오해를 받는다. 한 개인에게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자폐가 동시에 발생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두 가지는 별개의 장애이며 서로 무관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자폐와 사이코패스의 증상이 겹칠 수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폐와 인격장애의 차이를 분명히 아는 게 중요하다. 사이코패스는 다양한 성격 장애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진단받은 모든 사람이 사이코패스는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한다 (Abdalla-Filho & Völlm, 2020).
인격장애 혹은 자폐?
자폐는 발달 장애 중 하나로서, 사회적 소통기능의 영구적 상실과 제한되고 반복적인 행동 및 관심사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DSM-5는 자폐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다. 여기에는 완전한 증상이 나중에 발현되더라도 초기부터 증상이 나타나야 한다는 조건도 포함되어 있다.
반면 반사회적 인격장애(ASPD)는 아동기에 진단될 수 없는 정신 건강 상태이다. 성인기에 진입하기 전(15세 이전)에 행동 장애 진단이 이뤄져야 하며, 반사회적 행동이 계속될 경우 ASPD라고 진단될 수 있다 (Black, 2015).
DSM-5 기준에 따르면 ASPD는 아래의 특징을 포함한다.
● 만 15세 이상이 된 후에도 계속해서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는 패턴을 보임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지 못함, 자신 혹은 타인의 안전에 대한 무시, 충동성, 공격성 및 과민성 등 중 3가지 이상의 분명한 행동 징후가 관측되어야 함)
● 만 18세가 넘어야 ASPD 진단을 받을 수 있음
● 성인이 되기 전에 명백한 품행 장애가 동반되어야 함 (일반적으로 만 15세 이전에 표출)
● 정신분열병이나 양극성장애의 결과로서만 반사회적 행동의 증상이 발생해서는 안됨
ASPD의 기준과 특징을 보면, 양심의 가책없이 타인의 권리를 고의적으로 착취, 침해, 악용하는 모습이 있다. 우리는 사회적 규범을 따르도록 짜여 있고 일반적으로 자신의 사회적 이미지가 타인에게 바람직하게 느껴져 수용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러한 징후가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아울러 인간은 소속되고 연결되고 싶은 욕망을 타고났다. 우리는 인정받고 그에 따라 행동하여 사회에 받아들여 지기를 원한다. 반사회적 행동은 이러한 욕망과는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며,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이러한 괴리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반사회적 행동의 유전적 영향과 유전성이 확인됐지만 (Baker et al., 2006), 연구에 따르면 아동기의 부정적인 경험이 ASPD 진단과 관련될 수 있다고 한다. 성적 학대와 ASPD 사이의 연관성은 그다지 놀랍지도 아니다. 보호자가 이러한 고통을 야기했을 때 피해자가 느끼게 되는 적대감이 얼마나 클지 누구나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자폐 스펙트럼성 장애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사회적으로 어울리고 싶어하는 분명한 패턴을 가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동안 인터뷰했던 대부분의 자폐인들은 연결감과 소속감이 절실하다고 답했다. 의사소통과 감각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 때문에 이들에게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자폐인들의 욕구는 그들이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기위해 자신들의 증상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폐 아동은 우정을 위해 신체적으로 불편할지라도 억지로 눈을 맞추려 할 수도 있다. 이는 자폐인들이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서가 아닌, 비자폐인의 규범에 따르기 위해 채택한 사회적 행동의 한 예이다.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자폐인에 대한 학대와 이러한 학대가 인격 장애의 발달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폐를 가진 어린이가 학대를 받을 위험이 더 높고 이는 공격성의 증가로 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McDonnell et al., 2019). 이러한 학대의 장기적 영향 및 자폐 스펙트럼과 성격 장애 발달의 상관관계는 더 심도 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중복증상과 동반질환
자폐와 ASPD 증상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로 공격성을 들 수 있다. 이는 중복되는 특성이나 행동이 어떻게 다르게 발생하는지도 보여줄 수 있다.
-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행동
초기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공격성을 통해 ASPD를 예측할 수 있다 (Whipp et al., 2019). 각종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아동 및 청소년도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몇몇 연구는 이들 중 68%가 돌봄제공자에게 공격성을 보였다고 설명한다 (Kanne & Mazurek, 2011). 이와 같은 반사회적 행동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와 ASPD에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영역이다.
특히 모든 행동이 의사소통의 일환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자폐인이 특정 행동을 보이는 이유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사회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자폐아동이 더 높은 공격성을 보인다면 (Kanne & Mazurek, 2011), 공격성이 고통, 불편함, 혹은 위협으로 경험되는 감각적 자극을 표현하는 형태라는 추측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ASD의 공격성에 대한 이유를 추측하는 것만으로는 가족과 개인이 겪는 어려움을 덜어주지는 못한다 (공격성은 종종 자신을 해치는 방향으로 발현된다). 공격성은 ASD 환자가 속한 가족이 경험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로 꼽히기도 한다. 다만 고무적인 것은, 수면 장애나 위장 장애와 같이 근본적인 원인에 조치를 취함으로써 어느 정도 공격성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ASPD의 공격성은 다른 방식으로 발생할 수 있다. 몇몇 전문가들은 공격적인 행동의 동기로 충동성과 약물의 남용 등을 지목한다. 아이가 유전적인 이유로 성격 혹은 행동 장애에 걸리기 쉽거나 혼란스럽고 가학적인 환경에서 자라게 되면, 어른이 되었을 때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이러한 행동은 알코올 혹은 다른 약물의 영향이 있을 때 더욱 악화될 수 있다. 몇몇 국가에서 모든 폭력 범죄의 약 50%가 알코올 중독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한다 (van Amsterdam et al., 2020).
- ASD와 ASPD의 동반질환
서로 다른 두 가지 조건인 자폐와 ASPD의 증상은 겹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법의학적으로 이중진단이 내려질 수도 있다 (Carthy & Murphy, 2021). 하지만 이중진단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 인격장애와 ASD를 모두 가진 사람들의 평가에 대한 임상 지침 부족
● 동반이환으로 ASD와 ASPD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ADOS(자폐 진단관찰 스케줄검사) 및 IPDE(국제 인격 장애 검사) 등 진단 도구의 민감도 설정 필요
명백한 차이점
자폐의 사회적 상호작용 결핍을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동일시하는 것은 정확하지도 않을뿐더러 해로울 수 있다. 이는 신경발달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낙인을 찍는다. 아마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연구를 통해 제시된 솔루션을 채택하는 것일 것이다. 공감능력 결핍의 유형을 정확히 진단함으로써 사이코패스 혹은 ASPD를 자폐와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Hansman-Wijnands & Hummelen, 2006).
결국 연구원들이 설명한 바와 같이 (Hansman-Wijnands & Hummelen, 2006), 자폐인은 종종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는 순수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는 사이코패스적인 무감각, 즉 다른 누군가와 공감하지 못 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출처: Autism Parenting Magazine
